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산비탈에 자리 잡았던 오래된 달동네의 형성과 변화

by 오민승갱 2026. 10. 21.

도시의 높은 언덕을 따라 좁은 골목과 작은 집들이 이어지는 동네가 있다. 한때 많은 사람이 살아가던 달동네다. 가파른 계단과 낡은 담장, 서로 가까이 붙어 있는 집들은 지금의 아파트 단지와는 다른 풍경을 보여 준다. 달동네는 단순히 오래된 주거 지역이 아니라,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든 사람들의 삶과 도시 발전의 과정을 담고 있는 공간이다. 달동네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주민들은 어떤 생활을 했으며, 오늘날에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했는지 살펴보자.

 

산비탈에 자리 잡았던 오래된 달동네의 형성과 변화
산비탈에 자리 잡았던 오래된 달동네의 형성과 변화

도시의 산비탈에 달동네가 형성된 배경

 

달동네라는 이름은 산비탈이나 언덕처럼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주거 지역을 가리킬 때 널리 사용되었다. 높은 지대에 집들이 모여 있어 달과 가까워 보인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이 이름의 유래를 하나의 이야기로만 단정하기보다는, 사람들이 언덕 위에 모여 살던 주거 환경과 함께 이해하는 것이 좋다. 달동네는 특정한 한 지역의 공식 명칭이라기보다, 도시 곳곳에 형성된 비슷한 주거 환경을 일컫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의 많은 달동네는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던 시기에 형성되었다. 특히 한국전쟁 전후에는 피란민과 생활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머물 곳을 찾아 도시로 모여들었다. 이후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일자리를 구하려는 농촌 출신 주민들도 서울과 부산을 비롯한 여러 도시로 이동했다. 공장과 시장, 건설 현장 등에서 일하기 위해 도시로 온 사람들에게는 직장과 가까운 곳에 머물 집이 필요했다. 그러나 당시 도시에는 늘어나는 인구를 충분히 수용할 만한 주택이 부족했다.

집을 구할 경제적 여유가 많지 않았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땅값이 낮거나 주거 공간을 마련하기 쉬운 산비탈과 도시 외곽에 자리를 잡았다. 평탄한 땅은 이미 주택이나 상업 시설이 들어서 있거나 가격이 비싼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경사가 가파른 언덕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 되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공터나 국공유지 주변에 주민들이 직접 집을 짓기도 했으며, 기존 마을이 도시 확장 과정에 포함되면서 주거지가 점차 커지기도 했다. 달동네가 형성된 과정은 지역마다 달랐지만, 주택 부족과 도시 인구 증가, 저소득층의 주거 문제라는 공통된 배경이 있었다.

초기의 집들은 대체로 넓지 않았다. 목재와 판자, 벽돌, 슬레이트 등 구하기 쉬운 재료를 활용해 집을 지었으며, 생활 형편에 따라 조금씩 수리하거나 방을 덧붙여 사용하기도 했다. 모든 달동네의 집이 같은 형태였던 것은 아니지만, 좁은 땅에 작은 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선 모습은 여러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땅의 경사를 따라 집들이 계단식으로 자리 잡았고, 집과 집 사이에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달동네는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조성된 주거 단지와는 달리 주민들의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확장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도로와 상하수도, 배수 시설 같은 기반 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곳도 있었다. 비가 많이 오면 골목에 물이 고이거나 경사진 길이 미끄러워졌고, 겨울에는 계단과 비탈길이 얼어 통행이 불편했다. 이러한 환경은 주민들에게 일상적인 어려움을 안겨 주었다.

그렇지만 달동네를 가난과 불편함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곳은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 공간이기도 했다. 집을 마련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가족을 부양하고 자녀를 키우며 생활 기반을 만들어 간 곳이라는 점에서 달동네의 형성 역사는 우리 사회의 산업화와 도시화의 역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좁은 골목과 이웃의 정으로 이어진 달동네의 생활

 

달동네의 생활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가파른 계단과 구불구불한 골목이다. 언덕을 따라 집들이 이어져 있어 시장이나 버스 정류장에 가려면 긴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곳도 있었다. 집 앞에 넓은 마당이나 주차 공간을 마련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골목은 단순히 이동하는 길 이상의 역할을 했다. 주민들이 잠시 쉬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이 놀며 시간을 보내는 생활 공간이기도 했다.

좁은 골목은 불편함과 친밀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집들이 서로 가까이 붙어 있어 이웃의 생활 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누가 어디에 사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아침이면 집집마다 문을 열고 하루를 준비하는 모습이 이어졌고, 주민들은 길에서 마주치면 안부를 묻거나 필요한 물건을 나누기도 했다.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쉬웠고, 혼자 아이를 돌보거나 생계를 꾸리는 사람에게 주변의 관심은 중요한 버팀목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이웃 간의 관계가 언제나 따뜻하고 평화로웠던 것은 아니다. 주거 공간이 좁고 생활 환경이 열악하면 소음이나 사생활 문제로 갈등이 생길 수도 있었다. 골목을 함께 사용하거나 공동으로 물과 시설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불편함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달동네의 생활을 이해할 때는 주거 환경의 어려움뿐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들이 만들어 간 관계와 생활 방식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일부 달동네에서는 수도 시설이 충분하지 않아 공동 수도를 이용하거나 물을 길어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화장실이나 세면 시설을 여러 가구가 함께 이용했던 곳도 있었으며, 집 안에 충분한 난방 시설을 갖추지 못한 가정도 있었다. 겨울철에는 집 안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난방을 아껴 사용해야 했고, 여름철에는 환기와 습기 문제로 불편을 겪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조건은 모든 달동네에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지역과 시기, 가구의 경제적 형편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주민들은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생활을 꾸려 나갔다. 집 앞 작은 공간에 화분을 놓거나 채소를 기르고, 장독대를 두어 반찬과 식재료를 보관하기도 했다. 골목 한쪽에는 자전거나 생활 도구가 놓였고, 계단 옆에는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나 평상이 놓이기도 했다. 넉넉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주민들은 주어진 공간을 생활에 맞게 활용했다. 이런 흔적은 달동네가 단순히 낡은 집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온 생활 터전이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달동네에는 생계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일상도 있었다. 이른 아침 일터로 향하는 노동자, 시장이나 가게에서 일하는 상인, 집안일과 자녀 돌봄을 맡은 주민들이 각자의 하루를 이어 갔다. 자녀들은 학교에 다니고 골목에서 친구들과 어울렸으며, 어른들은 생계를 책임지면서 자녀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기를 바랐다. 집이 작고 생활 여건이 넉넉하지 않더라도 가족의 삶을 꾸려 가려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이러한 생활 모습은 달동네를 기억하는 주민들의 이야기와 사진 속에 남아 있다. 언덕길을 오르내리던 기억, 이웃집에서 음식을 나누던 일, 골목에서 친구들과 놀던 순간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르게 남아 있다. 오늘날 달동네를 기록할 때는 낡은 건물이나 좁은 골목만 촬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목소리와 기억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재개발과 주거 환경 개선으로 달라진 달동네의 모습

 

시간이 흐르면서 달동네를 둘러싼 도시 환경도 크게 바뀌었다. 도로와 대중교통이 확충되고 도시의 주택 수요가 늘어나면서, 과거의 주거 지역 가운데 일부는 재개발이나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의 대상이 되었다. 낡은 주택을 정비하고 도로와 상하수도 같은 기반 시설을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는 주민들의 안전과 생활 편의를 높이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달동네의 주거 환경 개선은 중요한 과제였다. 가파른 계단과 좁은 골목은 보행이 불편할 뿐 아니라 화재나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구조 차량이 접근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었다. 오래된 집은 단열과 방수 성능이 떨어지거나 안전 점검과 보수가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안전한 생활 공간을 확보하는 일은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필요했다.

하지만 재개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모든 주민이 같은 경험을 한 것은 아니다. 새로운 주택과 기반 시설이 들어서면서 생활 환경이 좋아진 곳도 있지만, 기존 주택이 철거되면서 오랫동안 살아온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던 곳도 있다. 이주 과정에서는 주거비 부담이나 생활권 변화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직장과 시장, 학교, 이웃 관계가 기존 동네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다면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일은 단순히 집을 바꾸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재개발 외에도 지역의 특성에 맞춰 기존 건물을 보수하고 골목길을 정비하거나 공동 이용 공간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주거 환경을 개선한 사례들이 있다. 오래된 집과 골목을 모두 철거하는 대신, 기존의 공간과 지역의 특성을 가능한 한 유지하면서 안전성과 편의성을 높이려는 접근이다. 다만 어떤 방식이 적절한지는 건물의 상태와 안전 문제, 주민들의 의견, 지역의 역사적 가치 등을 함께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오늘날 과거의 달동네 가운데 일부는 아파트 단지나 새로운 주택 지역으로 바뀌었다. 예전의 골목과 계단이 사라지고 넓은 도로와 현대적인 건물이 들어선 곳도 있다. 반면 오래된 주택과 골목이 여전히 남아 주민들이 생활하는 곳도 있으며, 일부 지역은 역사와 생활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장소로 관심을 받고 있다. 같은 달동네라는 이름으로 불렸더라도 지역마다 변화의 속도와 방향은 서로 다르다.

달동네의 변화를 기록하는 일은 도시가 발전한 모습을 확인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살았는지, 주거 환경은 어떤 과정을 거쳐 바뀌었는지, 개발 과정에서 누구의 삶이 달라졌는지를 함께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사진과 지도, 주민 인터뷰, 지역 신문과 행정 기록을 비교하면 과거의 동네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골목이나 건물을 촬영할 때도 장소의 이름과 촬영 시기, 주변 환경을 함께 기록하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유용한 자료가 된다.

특히 달동네를 단순히 낡고 가난했던 곳으로만 묘사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열악한 주거 환경은 개선되어야 할 문제였지만, 그곳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삶까지 낡거나 뒤처진 것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도시의 성장에는 일자리를 찾아 이동한 사람들의 노동과 가족을 돌본 시간, 이웃과 함께 생활을 이어 온 경험이 함께 담겨 있다. 달동네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도시 발전의 성과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생한 주거 문제와 이주, 공동체의 변화도 함께 이해하는 과정이다.

달동네는 과거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곳도 있고, 새로운 주거 지역으로 바뀐 곳도 있다. 그 변화의 형태는 다르지만, 한때 그곳에 집을 짓고 살아간 사람들의 생활은 우리 도시 역사의 일부다. 현재의 풍경만 바라보는 대신 과거의 지도와 사진, 주민들의 기억을 함께 살펴본다면 우리가 익숙하게 지나치는 언덕과 골목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오래된 달동네의 형성과 변화는 도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거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바뀌었는지를 보여 준다. 좁은 골목과 가파른 계단 뒤에는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온 사람들의 삶과 가족을 위한 노력이 담겨 있다. 달동네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구나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도시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